지난 10일 환경부에 따르면 애경산업(이하 애경)은 지난 5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추가 분담금을 지급 못 하겠다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분담금 납부의 근거가 된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에 대해서도 위헌법률심판 제청했다. 특별법에 분담금 총액과 횟수를 특정하지 않은 것이 부당하다는 뜻이다. 법에는 분담금이 75% 이상 사용되면 추가 분담금을 걷을 수 있다고 규정돼있다. 지난 5월 최대 피해를 일으킨 기업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또한 환경부에 공문을 보내 향후 분담금을 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 치료 등에 쓰는 분담금을 가해 기업들이 나눠서 내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 사태에 책임이 가장 큰 애경과 옥시가 이 돈을 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출처 |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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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문제 삼은 분담금은 지난 5월 징수된 2차 분담금이다. 애경과 옥시는 모두 1차 분담금을 지불했다. 환경부는 지난 2017년에 제정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법에 따라 애경과 옥시를 포함한 가습기 살균제 사업자 18곳과 원료물질 사업자 2곳으로부터 1250억 원의 1차 분담금을 걷었다. 이후 1차 분담금이 소진되자 지난 2월 관련 기업에 같은 금액으로 2차 분담금을 징수했다. 이때 애경과 옥시가 재부담한 금액은 약 100억 원과 705억 원이다.

이는 지난달 가습기 살균제와 폐암과의 연관성이 공식 인정됨에 따라 배상 및 보상액 규모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자 가해 기업들이 이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방어 조치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약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원인 미상의 급성호흡부전 환자가 잇달아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가습기 살균제를 자주 사용한 영유아와 임산부, 기저질환자가 폐섬유증을 앓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슈가 됐다. (▶관련 기사 <한신학보> 592호, 4면,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사회를 고발한다” 참고) 1994년부터 시중에 유통된 가습기 살균제는 유공(SK케미칼의 전신)을 비롯해 애

경과 옥시 등 생활용품 기업들이 연이어 제품을 내놓으며 시장은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가습기 살균제의 살균 성분은 정부의 유해성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흡입독성 평가를 거치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는 정부의 시야에서 벗어난 채 소비자들에게 팔려나갔고 무려 20년 가까이 판매돼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뒤에야 중단됐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지원 종합포털에 따르면, 지난 9월 30일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7870명이며 사망자는 1827명이다. 살아남은 이들은 폐 섬유화뿐만 아니라 폐렴, 천식 등 각종 폐 질환을 앓으며 고통받았다. 여전히 일부는 호흡기를 낀 채로 살고 있고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 각종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중이다.

정부는 2011년에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지고서도 법적 근거 미비와 부처 간 업무 영역 등을 이유로 소극적인 대처를 보였다. 그러다가 2014년 3월에야 처음으로 공식 피해 판정을 내리고 피해 구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국회는 2017년이 돼서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지원 방안 등을 담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키는 등 훨씬 더 늦었다.

특별법은 피해자들에게 요양급여와 구제급여를 지급하고 구제급여 대상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렇지만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피해자를 위해 특별구제 계정을 설치해 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가에서 본격적으로 피해 구제에 나서기 전까지 피해자들은 기업을 대상으로 각자 조정에 나서거나 민사 소송 등으로 피해를 구제받을 수밖에 없었다. 법원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가습기 살균제와 폐 질환이 인과관계가 있다며 제조업체의 배상 책임은 있다고 판단했다.

자그마치 12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집에서 무심코 쓴 가습기 살균제 하나 때문에 평생 뗄 수 없는 호흡기 질환을 얻은 것이다. 일반인에게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환절기 감기조차 이들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것과 같다.

피해자는 넘쳐나는데 가해자는 없는 불합리한 사회다. 괴로움 속에 사는 피해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은 피해자들 편에 서지 않았으며 기업들의 잘못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정부와 법원은 더 이상 피하지 말고 가해 기업들의 유죄 여부를 제대로 따져야 할 시점이다. 기업들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올바른 처벌을 받고 피해자들에게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출처 | 포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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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기자 hyeyun6890@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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