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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담긴 한국문화
다방커피에서 핸드드립까지
2015년 03월 03일 (화) 13:55:20 윤선미 기자, 이단번 기자 kino2305@hs.ac.kr, matstar@hs.ac.kr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음료는 무엇일까. 2004년 한국갤럽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하루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물은 제외) 1위는 ‘커피’(65.7%)였다. 2위인 ‘우유’(29.5%)와 3위 ‘주스’(21.2%)를 압도적으로 제친 결과였다.


 10년 후인 지금에 이르러서는 도심의 번화가나 한적한 동네에서도 커피숍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커피는 우리나라의 근대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다방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고, 자판기에서 뽑은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며 생겨난 문화였다. 현재 도심 번화가의 커피전문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사먹는 모습은 그 흐름에서 이어진다.


 서양문물의 상징, 고위층의 전유물

 19세기 말, 커피는 고종황제와 관료들을 중심으로 애용됐다. 관료들 사이에 커피를 선물로 주고받는 유행이 번지면서 양반들도 이를 따라하게 됐다. 그에 비해 백성들은 일부만이 외국인 선교사나 상인들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서민들은 커피를 ‘양탕국’이라고 불렀다.


 특유의 쓴맛과 검은 색깔이 한약의 탕국을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20세기 초까지 커피를 접할 수 있는 서민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서울에 세워진 일부 호텔의 다방은 외국인들과 관료들의 장소였다.



 개화의 상징물이었던 커피는 상위 계층에 빠르게 퍼졌다. 그 중심은 명동, 충무로, 종로 일대였다. 명동과 충무로는 일본인들이 상권을 확대시키던 거리였다. 그곳에서 일본식 다방들이 줄을 지어 개점해 종로까지 확대가 됐다. 당시의 일본식 다방들 역시 호텔식 다방처럼 대중들에게 열린 장소는 아니었다. 손님들의 대부분은 고위 관료층이나 개화 지식인들이었다.



 일제의 식민지 시절에는 조선인들이 연 다방이 생겨났다. 20년대 말에서 30년대에는 주로 문학가, 예술인 등이 다방을 이용하는 주 고객층이었다. 당시 가난한 예술인들은 찻값을 낼 형편이 되질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다수의 다방들은 이들에게 외상을 받았지만 그로 인해 문을 닫는 일도 잦았다.


 늘어가는 커피 수요와 다방의 성황

 해방 이후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일반 서민들도 커피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커피를 처음 접한 서민들은 용도를 알지 못해 엉뚱한 일에 쓰기도 했다. 달인 커피를 방 안에 둬 방향제로 쓰는 일이 있는가 하면, 쓴맛 때문에 구충제로 착각한 경우도 있었다.


 전후 일제에 쫓기던 이들이 거리로 나오고 독립 운동가들이 귀국하면서 서울로 모이기 시작했다. 자연히 서울 거리 곳곳에는 만남의 장소인 다방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서 다방들은 다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로 가득했던 임시수도 부산에도 다방은 계속해서 문을 열었다. 당시 다방에 모인 지식인들은 과거의 사랑방처럼 다방을 활동의 거점으로 삼았다. 다방 안에서는 정치, 경제, 전쟁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비단 지식인·예술인뿐만 아니라 사업가, 공무원 등도 사무실 대신으로 이용했다. 정치권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시기에는 다방이 비밀스러운 모의와 거래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60년대 단속으로 인해 귀물이 되어버린 커피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에 다방은 규제 대상이었다. 커피의 원료를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외환의 유출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이미 이전부터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정부와 대중들은 커피 불매운동을 펼쳤다. 커피는 낭비와 사치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때마다 다방업자들은 커피만 지탄의 대상으로 거론된다면서 반발했다. 하지만 국가의 경제재건을 목표로 내건 정부 방침은 완강했다.


  다방에서는 일부 국산커피만 판매할 수 있었고 가격을 조정해야했다. 하지만 다방업주들은 비밀리에 외국커피를 팔기도 했다. 다방을 찾는 손님들이 외국산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커피의 원료는 주로 미군 PX에서 나온 것이었다.


 결국 60년대 초, 서울시 경찰국은 불법 커피 판매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기도 했다. 외관상으로 외국산 커피와 국산 커피에 큰 차이점이 없기 때문에 경찰이 애먼 다방업주를 잡아가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커피가 귀해지자 일부 사람들이 공항이나 항구를 통해 커피원료를 밀수하다 적발당하기도 했다.


 1961년 12월 5일자 조선일보에 배추 속에 커피를 숨겨놓고 팔다가 단속에 걸린 사례가 기사로 나올 정도였다. 한술 더 떠 보급용 커피를 실은 미군 트럭이 도난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살아남은 다방을 찾는 고객층에는 변화가 생겼다. 손님들의 주요 층이 예술인들에게서 경제개발 붐을 탄 사업가들로 바뀐 것이었다. 커피 한 잔을 시키고 거래와 사업 이야기를 나누는 양복신사들이 다방을 가득 채웠다.


 산업화 이후의 커피문화

 70년대에 다방의 분위기를 바꾼 이들은 젊은이들이었다. DJ와 장발, 혀 굴리는 멘트, 리퀘스트 뮤직 등으로 대변되는 음악다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다방들은 기존의 다방과 선을 긋기 위해 커피숍이란 명칭을 내걸기 시작했다.


  한편 퇴폐다방이 나타나 문제가 됐다. 주로 장발의 청소년들과 히피족, 외국인 등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마약법 위반, 탈세, 식품위생법 위반, 특정 외래품판매금지법 위반, 음란행위 등으로 경찰 단속의 대상이기도 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커피는 대중들에게 친숙한 음료가 됐다. 사람들 간의 약속에는 “만나서 차나 한 잔”란 말이 빠지지 않게 됐고, 그 차는 커피로 결정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가정에서도 방문객에게 커피를 내오는 일이 당연시됐다. 이런 풍조 속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커피 강요에 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70년대 중반에 커피믹스가 등장하면서 국내 커피시장은 격변의 시대를 맞이했다. 인스턴트커피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기 때문에 뜨거운 물만 있으면 간편하게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커피믹스는 불티나게 팔렸다. 인스턴트커피를 취급하던 동서식품과 네슬레는 가정마다 들이기 시작한 TV를 통해 광고를 내며 서로 경쟁했다.


 80년대에 이르러 커피자판기가 우리나라의 커피시장을 휩쓸자 다방 업자들은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커피자판기는 빠르게 확산돼 학교나 사무실 등에 인기리에 비치됐다.



 민주화와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인스턴트커피에 익숙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새 바람이 불었다. 외국여행을 통해 커피전문점을 알게 된 이들이 그곳에서 맛본 원두커피를 원했던 것이었다. 이는 핸드드립 커피의 수요로 이어졌다. 개인의 취향에 따른 로스팅이 주목을 받으면서 손님의 요구에 맞춰주는 전문점과 바리스타의 인기가 높아지게 됐다.




 오늘날 한국의 커피문화
 인터뷰  <전광수 커피아카데미> 박주형 팀장

1. 다방에서 커피전문점까지 어떤 계기로 커피전문점이라는 커피문화 공간이 생기게 된 건가요?

 다방이란 칭호에서 커피전문점이라는 문화 공간이 생기게 된 계기는 ‘스타벅스’라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들어오게 된 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99년 이대점을 필두로 한국에 진출한 스타벅스는 유행에 민감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를 중심으로 커피전문점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다방’이라는 오래된 이미지의 공간에서 바리스타들의 전문적인 교육으로 인한 직업의식 및 고급화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문화공간이 생기게 되었고, 커피전문점이라는 커피문화 공간이 새롭게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커피전문점이 폭발적으로 생기게 된 이유와 어떤 이유로 사람들은 카페에 발을 끊질 못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커피문화가 시작된 것은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커피문화가 바뀌면서 세계적인 브랜드가 들어오고, 그에 따라 국내의 브랜드가 형성이 되면서 많은 카페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2009~2010년 경기 침체 속에서도 커피 시장의 성장세는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최근 커피전문점은 번화가뿐만 아니라 주택가·서점·대형마트·휴게소 등 생활밀착형 공간까지 파고들고 있습니다.



 과거 70년대 부터 지금까지 문화적인 흐름에 따라서 변화된 커피전문점의 공통점은 그 시대를 아우르는 ‘젊음’을 대표하는 코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최근 커피전문점은 역할이 다양해졌습니다. 커피전문점을 방문하면 레포트를 작성하는 대학생에서부터 비즈니스를 하는 직장인들, 부녀회 모임을 하며 간단한 케잌을 즐기는 주부모임까지 카페라는 공간이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또한 한국인에게 가정은 가족이 머무르는 곳이고, 직장은 생계를 위한 공간이다 보니 커피전문점이 집과 직장의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주는 제3의 장소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오늘날 커피는 단순한 기호 식품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지형을 형성하면서 진화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유럽의 안정된 커피 문화에 반해 우리나라는 커피 문화는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커피문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 하시나요?

 유럽에서 커피는 필요에 의해서 접하는 기호 식품으로써 역사가 오래 되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에스프레소를 먹으러 가는 시간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까요. 유럽처럼 안정적으로 커피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일단 커피와 카페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리스타들을 존중하며 커피를 단순히 음료로 접하지 않고 신중히 음미 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즐길 줄 알게 된다면 비로소 한 단계 더 발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우리나라보다 두 배 정도 많은데 소비의 대부분이 프랜차이즈 전문점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이루어집니다. 각자의 취향과 기분에 맞는 커피를 골라 마시고 또 색다르게 즐기거나 건강하게 맛보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케냐, 콜롬비아 등 커피 원산지로부터 질 좋은 생두를 수입하는 양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게다가 커피를 선호하고 즐기는 세대의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커피 문화에 익숙해진 지금 세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꾸준히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찾게 될 것 입니다.


  유럽에서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이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것이 일상인 것처럼 이제 커피는 우리의 삶과 사회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보편적인 문화가 된다면 우리나라만의 커피문화도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어떤 식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올 초에 발간된 한 커피 전문 잡지를 보면 ‘한국은 이제 더 이상 커피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가장 앞선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해외 농장이나 커피 마켓 등을 다니다 보면 한국 동향에 대해 궁금해 하고 적극적으로 묻는 이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커피 전문가들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 아마 커피올림픽이라 불리는 WBC 대회에서도 우리나라 바리스타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커피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높기 때문 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비록 커피를 직접 생산하지는 않지만, 일구는 것 이상으로 커피를 잘 알고 즐겨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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