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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라, 즐겨라, 말하라!” 광장, 시민의 공간
2015년 10월 25일 (일) 15:31:41 윤선미 기자/이단번 기자 kino2305@hs.ac.kr matstar@hs.ac.kr



 유럽의 문화는 광장의 문화라고 할 만큼 유명한 광장들이 많다. 그 광장들은 과거 사람들 간의 접점역할을 하며, 현대에도 광장은 시민의 자유성·주체성·정치성 등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광장은 늦은 근대화와 단순히 사람들의 보행을 잇는 길의 역할 했기 때문에 유럽에 비해 더디게 발전했다.


 반면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항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광장이 시민을 모이게 하고, 투쟁하게 하는 장으로 재탄생하게 되 었다. 1919년 3·1운동의 집결지로 사용됐던 옛 서울시청 앞 광장부터 노동자 결의 대회, 세월호 집회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를 낼 때 이용되는 광화문 광장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는 광장과 함께 변모했다.


  ‘열린공간’의 유럽광장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소통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뜻한다. 고대의 도시국가 형성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광장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그 장소의 특성도 다르게 나타났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광장의 역할은 주로 장터와 거리가 수 행했다. 따로 광장이라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은 채 저잣거 리에서 공연이 벌어지거나 경제, 취식활동 등의 사회적 교 류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한데 모 일 수 있을 큰 공간이 따로 생성되지 않았던 이유는 조선시 대까지만 하더라도 대규모 인파가 모일 일이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인 광장의 관념이 처음으로 드러난 사건은 3.1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이 시작된 탑골공원 은 조선에 최초로 조성된 근대식 공원이었다. 하지만 경신학 교 출신의 정재용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그 순간부 터 탑골공원은 만세운동이 시작된 광장으로 변하게 됐다.


 이 후 해방과 한국전쟁 등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 나라에 드디어 제 형태를 갖춘 광장이 등장하게 됐다. 대대적으로 조성된 최초의 광장은 여의도에 세워졌다. 지 금의 여의도공원이 들어서 있는 자리는 1972년 박정희 군사 정부에 의해 ‘5.16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콘크리 트를 부어 평평하게 만든 여의도광장은 주로 유신정권의 선 전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고, 이후 신군부 역시 ‘국풍81’ 같은 각종 행사에 사용했다.


 또한 유사시에 비행기 활주로 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점도 감안한다면 철저히 정 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때문에 여의도 광장은 광장의 소통이라는 기본 요소가 무색할 정도로 정부 선전의 역할이 강했다. 2004년의 광장 정비 사업을 통해 지금의 잔디광장이 들 어서게 된 서울광장은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 ▲촛불집 회 ▲세월호 집회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목소리가 울려 퍼지 는 공간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여의도광장이 독재정부의 정 치활동에 사용됐다면, 이곳은 시민들의 문화·정치활동에 자주 사용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광장의 본래 역할에 더 가 깝다고 할 수 있다. 광화문광장의 경우는 조선시대의 육조거리를 계승하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세종대로 사이에 조성되면서 시민들의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게 됐다. 또한 서울시에서 이 곳을 홍보용 공터로 한정지었기 때문에 시위가 금지된 광장 이라는 기형적인 성격을 가지게 돼버렸다.


 유럽의 광장


  유럽 역사는 광장의 역사다. 유럽은 도시 광장에서 민주주 의가 꽃을 피웠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보수와 진보의 경쟁 과 융합이 이루어졌다. 유럽의 다양한 광장들 중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는 유럽을 대표하는 광장이다.


 ‘민중에 의한 통치 민주주의 체제의 중심’ 을 의미하는 아고라는 ‘모이다(아게이로)’라는 그리스 동사에 서 나온 말로 민회가 열리는 장소, 즉 시장을 뜻했다. 그리스 인들은 시장에서 사람을 모으고 생각을 교환했다. 시장에 모 여서 정치, 철학, 사상을 공유하고 논쟁하던 곳이 바로 광장 이었다.


 이처럼 중세유럽의 도시에서 광장은 시장으로 출발한 경우 가 많지만, 시장과 종교, 정부가 공간 사용의 주도권에 대한 긴장과 타협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공공공간을 만들었다. 중세 유럽의 광장은 다양한 형태를 갖고 있었고 규모 또한 소규모 광장부터 국가적 규모의 기념비적 광장 등 여러 가지 였다.


 기능도 다양해서 공중의 여론이 교류·형성되는 공론장 이자 시장이기도 했고, 다양한 문화행사 및 종교의례가 이뤄 지는가 하면 지배 권력의 위력이 현시되는 곳이자 피지배자 들의 저항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광장은 도시의 핵 심부에 위치하면서 도시의 모든 것이 집중되는 공간이었다. 도시 중심부는 권력자들의 공간이었고 광장 주변은 길드 본 부, 교회 그리고 시장으로 둘러싸인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광장에 가까울수록 지배와 중심에 가까운 것이었다. 절대주의 시대 이후 권력을 기념하는 대규모 광장들이 조 성되어, 왕을 위한 절대 권력의 공간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지배의 공간은 곧 저항의 공간으로 전환되기도 했는데, 루이 15세 광장이 혁명광장이 되어 단두대가 설치된 것은 대표적 인 예였다.


 근대 이후 도시화와 대중사회화가 급속하게 진행 되면서 광장은 더욱 큰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일상과 여가의 공간으로 사용되는 것은 물론 대중 민주주의가 일반화된 조 건 하에서 광장은 대중 정치의 유력한 공간이 되었다.


  18세기 말에는 급격히 도시인구가 팽창하고 부르주아적 도시대중이 형성되면서 그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고 참여 하는 공론의 장이 형성됐다. 이후 광장의 개념은 공공공간으 로서 대중토론과 집회를 통한 여론형성의 장으로 확장됐다. 이처럼 유럽에서 광장은 시민사회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장 소였다. 또한 회합, 교환, 상호 인식의 장소인 열린공간의 역 할을 담당하며 유럽 정체성의 근원을 이뤘다.

   
 
   
 


  ‘광장의 탈정치화’를 말하다

 광장은 ‘열린공간’이다. 사람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광장은 자유로움 과 평등함을 바탕으로 집단성이 구현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 다. 이러한 본질적 특성으로 광장은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수 행해 올 수 있었다. 때로는 시장이 되어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 과 구매하는 사람을 연결하는 집단적 공간이 되어 왔으며, 친 밀성과 익명성이 교차하는 중간지점으로써 사람들의 교류와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정치공동체 구성원들 의 화합이 이루어지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광장의 다양한 역할 중 정치적 기능은 역설적인 양상을 보 이고 있다. 어떤 때에는 정치권력에 의한 여론 동원의 수단으 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정치공동체 구성원들의 민주적 화합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즉 열린공간으로써 광장은 다른 어떤 장소보다 정치적 동원뿐만이 아니라 민주적 의사소통에 도 매우 커다란 효과를 산출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광장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시민의 모습에 긍정 적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24일, <조선일보>는 ‘서울 시청 광장서 시위·집회 그만하고 시민에게 돌려줄 때’라는 제 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서울광장 사용이 2010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면서 집회·시위가 크게 늘었는데, 이 때문에 잔 디 보수에 돈이 많이 들고 주변이 시끄러우니 집회·시위는 허 가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젠 제발 서울광장을 시민 들의 것이 되게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 달라’는 주장은 현실 정치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작년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 은 서울광장에서 정치적 목적의 집회·시위 개최를 금지하는 정 책을 제안했다. ‘시민에게 서울광장을 돌려드리겠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광장의 탈정치화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누구에게도 시위대에 광장을 봉쇄할 권한은 없다.


 헌법 제21조에 따라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고,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광장은 개인의 사회화와 대면을 위한 장소이자 기억이 집합되며 활동 이 교차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바람직해야 할 설정의 방향 찾기

   
 
   
 

 광장이 사회구성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은 다양하게 나 타난다. 당장 크고 작은 도시들의 광장으로 향하면 문화공연·휴 식·여가활동 등을 즐길 수가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 구성된 광장 은 시민복지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광장의 또 다른 기능인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마 찰이 자주 일어난다. 이 마찰은 시민들 사이에서 나타날 수도 있 지만 국가와 시민 사이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 세월호 집회 때마다 국가공권력이 광장의 시민들을 비합리적으로 압박했던 사건들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사회에서 광장은 그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정치적인 주 장과 참여, 교류를 할 수 있는 기초적 공간이다.


 때문에 집권층에 게 광장은 시민들과의 소통 창구로 작용하기도 하고, 동시에 두려 운 존재로 다가올 수 있다. 시민의 가장 큰 무기는 집결이고 집결 의 공간이 광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더욱 성장된 민주시민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광장의 부분적 기능 제한은, 그 제한 사항 이 정치적이라는 점에서 더욱이 장해물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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