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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생활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2018년 10월 23일 (화) 22:14:27 길성은 gilbona@hs.ac.kr

지난달 13일 가수 구하라 씨(27)의 전 남자친구인 최 모 씨(27)가 성관계 동영상으로 구하라 씨를 협박해 논란이 됐다. 이 일을 계기로 ‘리벤지 포르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 모 씨가 보유한 성관계 동영상이 ‘리벤지 포르노’기 때문이다.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란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할 목적으로 사귈 당시 촬영한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유포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 자체가 가해자 중심적 표현이라고 비판한다. 가해자는 영상 소지만으로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게 된다. “연예인 인생 끝나게 해주겠다”는 최 모 씨의 발언에 무릎을 꿇은 구하라 씨의 모습은 이를 시사한다.

한국 사회 속 만연한 디지털 성범죄 현재 우리나라의 각종 음란사이트와 웹하드·파일공유사이트(P2P)에는 출처 불명의 일반인 성관계 영상이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다. 위 사이트들에선 ‘전여친 유출’이란 제목의 영상이 당당히 공유된다(▶관련기사 <한신학보> 556호, 10면, ‘국산 야동보는 당신이 범죄자다’ 참고). 100만 회원을 보유했던 음란사이트 ‘소라넷’은 17년간 운영되다 지난 2016년 3월 폐쇄됐다. 그러나 ‘제2의 소라넷’들이 여전히 온라인상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음란사이트 ‘꿀밤’에서 추천 수 높은 성관계 영상을 올린 회원의 등급을 높여주고 상금을 지급한 사실이 지난해 1월 적발됐다. 다운로드 횟수에 따라 업로더들이 사이버머니를 벌 수 있는 웹하드와 P2P사이트도 마찬가지다. 영상만 올리면 돈을 벌 수 있는 간단한 수익창출 구조에 수 많은 회원들이 경쟁적으로 성관계 영상을 업로드한다. 자극적인 영상이 높은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규모가 커진 사이트들로 인해 피해자 모르게 업로드되는 성관계 영상은 늘어나게 된다.

디지털 성범죄는 수많은 2차 가해를 낳는다. 음란사이트 등에 업로드된 영상은 피해자가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소비된다. 이를 알게 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공론화해도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영상을 삭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피해자는 수 많은 조롱식의 댓글을 마주해야 한다. 영상 삭제를 위해 피해자들은 디지털 장의사에게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삭제를 의뢰하기도 한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5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원하지 않는 영상이 유포돼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올 상반기 센터로 들어온 신고접수만 무려 1,295건에 달해 즉각적인 삭제 지원은 힘든 상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영상이 업로드된 최초 사이트가 차단된다 하더라도 영상 유포를 완벽하게 막기 어려운 점이다. 미리 영상을 다운로드한 사이트 회원들이 다시 유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카오톡 등 각종 SNS를 통해 피해자의 영상이 확산되면 막을 방도가 없다.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리벤지 포르노 범들 강력징역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일주일 만에 국민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이틀 뒤 혜화역에는 1만 5,000여 명의 여성들이 모여 ‘디지털 성범죄 규제 법안을 시행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합의된 성관계 동영상도 협박·유포하면 범죄다.

현행법에 따르면 피해자 동의 없이 영상을 촬영·유포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만약 합의하에 촬영했더라도 피해자가 유포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가해자는 징역 3년이나 500만 원 이하 벌금을 선고받는다. 정부는 작년 9월부터 디지털 성범죄자에게 벌금형을 제외하고 5년 이하의 징역형만 선고하겠다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내놨다. 아울러 피해자가 유포된 성관계 동영상의 삭제를 요청할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선차단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검거 후 처벌은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1심 판결 현황’에 따르면 지난 6년간 디지털 성범죄 혐의로 재판받은 7,446명 중 징역형을 받은 피고인은 647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엄벌을 촉구하는 것과 달리 디지털 성범죄 처벌은 허술한 점이 많다.

합의하에 촬영된 성관계 동영상을 두고 여론이 갈리고 있다. 성관계 동영상 유포 앞에서 촬영 합의 여부가 적합한 논쟁이라 할 수 있을까? 과거 합의 사실을 들이미는 건 본질 흐리기에 불과할 뿐이다. 합의여부와 별개로 피해자 동의 없이 동영상을 유포하고 시청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다. 그러나 일부 남성들에게는 이와 같은 인식이 확연히 부족해 보인다.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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