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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젠더의 문제가 아니다
2018년 11월 18일 (일) 23:43:03 이미선 @hs.ac.kr

춘천에서 한 여자가 살해당했다. 피해자는 상견례를 3일 앞둔 예비신부, 가해자는 예비신랑이었다. 가해자는 같은 학원에 다녔던 피해자에게 4년 만에 연락해 결혼을 이야기했다. 두 번째 만남부터는 결혼을 종용했다. 가해자는 결혼 후 부모님이 운영하는 춘천의 국밥집 2층에서 지내자고 했고, 피해자는 서울 직장에 입사한지 한달밖에 되지 않았다. 피해자가 거부하자 가해자는 그녀를 춘천으로 불러내 살해하고 시체를 훼손했다. 신혼집과 혼수 문제로 인해 감정이 격해져 일어난 우발 살인이라고 주장했으나 유가족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혼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지난 1월, 의정부 데이트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피해자의 전남편이 가해자와 합의하고 합의금 9천만 원 중 6천만 원을 가져갔다. 1월 30일 서울시가 여성 2천 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88.5%의 여성은 데이트 폭력을 경험했다. 우리의 세상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살인은 5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중범죄다. 최대 사형이 판결될 수 있지만 춘천 살인사건의 가해자는 초범이라는 이유로, 우발적이라는 진술로 무기징역조차 받지 않을 것이다. 가해자는 어쩌면 오만 원짜리 대필 반성문을 제출하고 징역 5년에 그칠 수도 있다.

여자가 시가의 위층에 살기를 거부했다고, 상대적으로 작거나 약하다고 폭행당하거나 죽임당해서는 안 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람은 자기만의 권리가 있다. 자기의 직장을 지킬 권리가 있고, 싫은 것에 싫다고 말할 권리도 있으며 자신의 신체의 안전을 보호받을 권리도 있다.

내가 지금 두 눈으로 앞을 보고, 열 손가락 멀쩡히 타자를 치고, 두 발로 땅을 밀어내며 걷는 모든 것이 내 운이다. 운에 생명을 맡긴다는 건 비극적이고 우습다. 그러나 현실이다. 혹자는 이런 현실을 부정하거나 자신의 현실이 아닌 것에 안도할지 모른다. 그 아둔함이 우리가 맴도는 문턱을 좁힐것이다. 운 나쁜 사람들은 점점 늘어가고, 우리나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운 나쁜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은 젠더 문제가 아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것은 운의 문제다. 아니, 사회의 문제다. 운이 나쁜 사람의 운을 탓하며 가해자에게 집행유예를 주거나 감형을 해주는 사회, 폭력에 무디고 피해자에게서 이유를 찾는 사회. 여성 혐오 범죄가 존재한다고 여성이 피해자인 모든 범죄가 여성이어서 당하는 범죄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그들은 단지 운이 나빴고, 그 나쁜 운은 우리가 만들었다. 

당신이 여성이건 남성이건 이 모든 폭력이 당신의 문제임을 알 필요가 있다. 이 지지부진한 처벌들이 언젠가 운 좋았던 우리의 목을 죄일 것이다. 운 좋게 피해간 불행에 안도하지 말고, 불행이 당신에게 올 리 없다고 자만하지 말고, 피해자에게서 가해자의 이유를 정의 내리려 하지 말자. 그 모든 것이 머지않아 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해온 정당화와 안도에서 우리의 불행이 태어날 것이다.이것은 젠더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문제다. 가해를 한 사람과 아둔한 사람들의 문제다. 그리고 솜방망이 처벌을 통탄하면서도 바뀌지 않는 사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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