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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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지난 4월 18일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의 최종 후보에 선정됐다. 부커상은 1969년부터 시작된 영국 최고 권위 소설 문학상으로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린다.

소설은 내면 및 공간 묘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철저히 이야기 골격만을 빠르게 따라간다. 1, 2부는 산골 소녀에서 소도시의 기업가로 성장하는 금복의 일대기에 초점을 맞췄다. 3부는 감옥을 나온 뒤 폐허가 된 벽돌공장에 돌아온 금복의 딸 춘희의 생존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고래>를 국밥집 노파의 잔혹한 복수극이라고 소개한다. 국밥집 노파는 끔찍한 박색으로 남의 집 부엌살이로 떠돌아다닌다. 겨우 눈 맞은 주인집 아들 때문에 주인집 마님으로부터 요절이 난 뒤 쫓겨난 비극적 인물이다. 계속되는 비극으로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돈을 벌기로 작정한다. 악착같이 모아 천장에 숨겨놓았지만 허망한 죽음으로 돈의 발견과 함께 노파의 저주가 금복과 춘희에게 향하며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불리는 춘희는 노파의 저주와 금복의 욕망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잔혹함과 동정을 모두 감싸 안는 존재로 그려진다. 작가는 ‘언어 너머, 혹은 그 이전에 존재하던 우리가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감각을 온전히 지닌 춘희는 이 이야기 안의 사건과 인물들을 모두 설명하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기승전결이라는 소설의 정통적 작법을 빌리지 않고서도 긴 이야기를 얼마나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초반부 연관성 없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던 이야기들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정교하게 맞물려 큰 그림을 그려간다. 사랑과 불행, 돈과 가난, 고통과 복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들을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다.

출판사 문학동네 역시 ‘작가라는 이름을 얻고 처음 내는 소설로 읽는 이를 웃게 하고, 울게 하고, 마음 졸이게 하고, 한숨짓게 하고, 미소 짓게 하고, 전율하게 하고, 실소하게 하고, 허탈하게 하더니, 급기야는 감동까지 던져놓는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사악한 유머로 가득 찬 소설’이라면서 ‘생생한 인물들은 어리석지만 현명하고 끔찍하지만 사랑스럽다’고 소개했다. 살인, 방화, 폭력, 성폭행 등의 범죄가 난무하는 인물들의 폭풍 같은 서사가 민담, 전설, 동화, 초현실 요소와 버무려져 전개되며 농밀한 해학과 예리한 풍자까지 더해져 낯설면서도 강렬한 독서 체험을 선사한다.

<고래>는 2004년 출간 이후 꾸준히 소설 애호가들을 사로잡은 스테디셀러다.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국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올해 부커상 최종 후보작 6편에 포함되면서 국내 출간 19년 만에 영어권 독자들 사이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김하람 기자 gkfka0417@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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