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남성들에게 열등감과 적개심이 있었고 예전부터 범행을 저지르고 싶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자들의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공포의 메시지가 발견 된다. 지난 7월 21일 오후 2시 7분 서울 관악구 신림역 4번 출구에서 칼부림 소동이 일어났다. 범인은 4번 출구에서 80m 정도 떨어진 상가 골목에서 20대 남성을 10여 차례 찔러 살해한 뒤 골목 안쪽으로 이동해 30대 남성 3명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모든 범행까지 걸린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은 4분 정도다. 그는 사람을 살해하고 부상을 입힌 후 인근 스포츠센터 앞 계단에 앉아 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사건 직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범인을 조선제일검 등으로 부르며 범행을 두둔하는 글이 올라온 것과 관련해서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여기에는 피해자 가족과 유가족에게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유발한 일을 마치 흥미성 이슈로 전락시키거나 인명 경시 풍조가 자칫 온라인상에서 확산되는 걸 차단하겠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범행이 일어난 후 5일 뒤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라 피의자 신상이 공개됐다. 33세 남성 조선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범행을 저지르고 싶었다’, ‘칼로 찌르는 방법과 급소 등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 ‘또래 남성들에게 열등감과 적개심이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우발적 범죄가 아닌 계획범죄였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과 같다.

모든 범행을 인정하는 듯 했던 그는 8월 23일 열린 재판에서 열등감은 없었고 고의로 살인을 하려던 것도 아니라고 말을 바꿨다. 또 피해망상을 겪고 있다 주장하며 형량을 낮추기 위한 목적을 보였다. 검찰은 조선 측이 법정에서 한 주장은 사실관계에 비춰봐도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또한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유족들을 증인으로 신청할 계획을 밝혔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청년인데 직장도 딱히 없다 보니까 사회에 잘 적응한 사람을 향한 밑도 끝도 없는 적대감을 이 범죄로 구현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 목숨을 잃으신 분은 자기 일상을 성실하게 살던 부모님이 안 계셔서 동생을 부양하던 청년인데 자신의 어려움만 호소하는 이기적인 주장들은 우리가 일말의 공감도 하면 안 된다”며 “변명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끊임없는 살인 예고 국민 모두 긴장된 상태에서 일상생활

7월 21일 신림역 칼부림 사건은 하나의 범행으로 끝날 줄 알았던 국민들은 결국 비슷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외출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이 채 해결되기도 전인 8월 3일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과 8월 17일 신림동 공원 강간살인 사건 그리고 8월 19일 2호선 지하철 흉기 난동 사건, 21일 대전 중구, 서울 노원구에서도 강력 범죄가 발생했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잇따른 것이다. 한 달여 만에 도심 곳곳에서 발생한 강력 범죄의 피해자만 스무 명이 넘는다. 피해자들은 그저 일상생활을 하던 중에 일면식도 없던 범죄자들이 휘두른 흉기에 속수무책이었다. 대게 살인 사건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원한 관계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범행 동기도 대상도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더욱 큰 공포를 불러온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인 지난 22일 오전 9시까지 살인 예고 글 443건을 발견했고 작성자 201명 검거, 2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검거된 피의자 가운데 41.7%인 80여 명이 10대라는 것이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그중에서는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도 적지 않았다. 지금도 온라인 살인 예고의 끝은 보이지 않고 있으며 더 많은 작성자와 피해자가 나올 수 있음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테러리스’가 종료되는 그날만을 기다리는 대한민국

#1. 지난 10일 오후 11시경 A씨(17)는 SNS에 ‘다 꼼짝 마라. 오늘 밤 끝장 보자. 칼춤 예고. 내일 가오사거리 11시’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그 후 게시글을 발견한 목격자가 신고해 경찰은 작성자를 검거해 협박 등 혐의로 입건했다.

#2. 지난 20일 오전 1시 57분경 B씨(20대)는 한화이글스 TV 유튜브 채널 실시간 댓글 창에 ‘다음 경기. 칼부림하러 갈게요. 다 죽입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이에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20대 남성 B씨를 검거했다.

살인 예고 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생 4명이 ‘테러리스(terrorless)’라는 알림 서비스 앱을 만들었다. 그들은 ‘인터넷에 올린 살인 예고 글에 대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해 조금이라도 그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고 싶었다’며 제작 동기를 밝혔다. 지난 5일 개발을 시작해 다음 날 서비스를 시작한 테러리스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는 테러 예고글의 출처와 예고된 지역을 지도에 표기해 알려주는 웹사이트다. 예고된 위협은 노란색 원, 검거 완료된 건은 파란색 원, 허위로 판정된 위협은 회색으로 표시한다. 시민 제보는 운영진의 검토 과정을 거친 후 최종 게시된다. 이 정보를 토대로 시민들은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을 피해 갈 수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시민 제보를 바탕으로 관련 정보의 출처 링크나 기사가 함께 제공된다. 운영자가 정보의 허위 여부를 직접 판단하지 않고 이용자가 검증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살인과 칼부림 예고 글은 시민들의 공포감과 불안감을 조성하고 사회 혼란을 부추긴다. 이러한 점에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온라인 공중협박 행위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살인 예고 글을 올린 것만으로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 국회에서는 관련 입법 시도가 이뤄졌다. 국민의 힘 소속 홍석준 의원은 SNS 등 온라인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살인 예고 등의 협박 글을 올리면 직접 처벌할 수 있도록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영식 의원 역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중을 위협할 목적으로 살인, 상해 등 공중협박 행위 내용을 유통하는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외에도 범죄행위를 자세하게 묘사하면 안된다는 입장도 나왔다. 신림역 살인 사건 이후 남은 과제는 사이코패스 관리, 모방범죄 예방 등이다. 경찰은 현재 지역 치안 활동 등을 점검 중이다. 다양한 방범 활동 계획도 재수립하고 있다. 다만 범죄자들의 범행계획을 사전에 포착하는데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이에 경찰은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주현 프로파일러는 ‘범죄행위 영상이 보도되면서 이에 자극을 받아 모방하는 경우도 있다’며 ‘범죄행위를 자세히 묘사하거나 범죄행위 영상 자체를 그대로 내보내는 대신 범죄자가 체포되는 영상을 통해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모방범죄와 추가 피해를 막으려면 수사기관은 물론 국민적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 사례도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묻지마 범죄는 피해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크다. 범죄를 지지하는 공범이 있고 폭탄 등 살상력이 강한 도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범죄는 개인이 저지르는 것에 머물렀다. 하지만 개인의 반사회적 신념과 혐오가 온라인상에서 확산될 여지는 충분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1일 국무회의에서 선진국이 만든 정신건강 프로젝트 등을 참고해 새로운 인프라를 만들 수 있도록 예산에 반영할 것을 보건복지부에 당부했다.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등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정신질환자 치료 관련 제도를 검토한다. 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정신질환관 다른 사이코패스에 대한 관리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경찰의 치안 역량 보강의 위해 의무경찰제 재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김하람 기자 gkfka0417@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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