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EBS 다큐멘터리 ‘K 인구대기획 초저출생’편에 등장한 외국인 교수의 절망이 화제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는 원색적인 표현이 나온 배경은 저출산이다. 캘리포니아 법대 명예교수 조앤 윌리엄스가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듣고 위와 같은 반응을 보여 인터넷에서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지난해 0.78%로 세계 최초 0.7%대를 기록했다. 이는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인 2.1%보다 3배 적은 수치다. 통계청의 장래인구 변동요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계속 감소해 2041년을 기점으로 인구 5천만 선이 무너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례없는 인구 위기가 닥쳤지만 저출산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받는 건 미래 세대가 아니냐는 오해가 많다. 아직은 4천만에서 5천만으로 인구 증가를 경험한 세대가 더 많은 탓이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인한 문제들은 이미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농촌에서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한 상태다. 지난해 3월 전국 231개 기초 지차제 중 113개 지자체가 소멸 위험 진입 단계를 넘어섰다. 국방부에서도 군 병력 충원 부족으로 적색경보가 켜졌다. 지난해 육군사관학교는 개교 이래 첫 정원미달이 발생했다. 전시 상황인 우리나라에서 저출산은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이에 정부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국가는 출산 혜택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해 왔다. 지난 8월 확정된 내년도 예산안 ‘저출산 대응 5대 과제’도 양육이나 교육 및 주거 환경조성이 핵심과제다. 이렇듯 정부 지원 정책은 산모 건강 보장을 제외하면 전부 출산 사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저출산이 발생하는 원인은 더 근본적인 부분에 있다. 청년들은 출산 이전에 결혼조차 버거워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9%대였던 조혼인율은 2019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23년에 들어서는 3.7%를 기록했다. 결혼을 해도 애는 낳지 않는 것과 결혼조차 하기 힘들어하는 것은 명확한 차이가 있다. 지난해 정부가 저출산 대응에 50조가 넘는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증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출산율을 보면 더더욱 지금의 정책 기조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전쟁통에도 애는 낳았다’라는 말이 있지만 나날이 치열해진 입시 경쟁과 취업 시장은 가정을 꾸리기 위한 기준점을 한없이 올려놨다. 사회초년생으로 신음하는 청년들에게 이성과의 만남은 사치가 된 지 오래다. 통계청에서 지난 8월 발표한 ‘청년 의식변화 사회조사’에 따르면 미혼 여성과 남성 모두 결혼을 포기하는 첫번째 이유로 결혼 자금 부족을 꼽았다.

청년의 삶이 개선돼야 실질적인 저출산 해결이 가능하다. 출산 혜택 마련에 급급하기보다 청년들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 여유가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문제에 대한 접근 없이 결과만을 중시한 정책은 여태까지의 성과가 말해주듯 성공할 수 없다. 이제는 기존 정책을 보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근본적인 정책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할 시점이다.

문종연 수습기자 foxhunter12@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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