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익현 교수 (사회복지학과)
| 장익현 교수 (사회복지학과)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복지학과에서 사회복지정책을 주로 강의하고 있는 장익현 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제가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학부시절 행정학, 그 중에서 특히 정책학 을 공부하면서 정부가 사회문제를 해결하 기 위해 개입하는 도구인 ‘정책’이란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 회에서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고, 정부도 여 러 가지 모양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 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해결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하기도 합니다. 정책은 우리들 의 생각보다 훨씬 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역동적입니다.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 중에 제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불평등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사회이므로 불평등은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한거고, 이것이 꼭 사회문제로 할 수 있냐라고 일각에서는 주장하기도 하죠. 그러나 분명 한건, 불평등이 적은 사회일수록 더 잘 기능하고 있다라는 점입니다. 제가 공부했던 영국 요크대학의 보건학 교수인 케이트 피 켓 (Kate Pickett)은 유명한 저서 ‘The Spirit level: Why more Equal Societies almost always do better’에서 불평등도가 낮은 국가들은 높은 국가에 비해 사회적 신뢰도, 범 죄율, 10대 임신비율 등 여러 사회지표에서 더 우수한 결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데이터를 가지고 논증하였습니다. 그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나친 불평등은 사회를 더 나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지요. 최근 사용되는 용어로 쓴다면 지나친 불평등은 ‘장벽사회’를 만든다고 합니다. 장벽이란 ‘넘사벽’처럼 아무리 노력을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을 말합니다. 적당한 불평등은 오히려 노력의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벽을 넘을 수 없다면, 누가 노력을 하려고 할까요? 따라서 심한 불평등은 결국 장벽사회로 이어지고 전체적인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게 되는 거겠죠.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잘 살 고 게으른 사람이 가난한 건 당연한거 아니야?’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하나는, 불평등이란 것은 경제적 행동/능력의 결과일 뿐 아니라 정치적 결과일수도 있습니다. 부유층은 더 많은 자원을 소유하고 있고, 더 강력한 로비력을 가지고 있죠. 미국에서 금융제도가 부유층에게 유리한 방면으로 계속해서 변화 하고 있다는 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일단 자원을 보유하게 되면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적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 자원을 동원하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이러한 자원을 가지지 못한 빈곤층, 저학력층은 본 인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빈부의 격차가 시장 경제의 결과라고 하지만, 사실상 시장경제의 규칙은 정치적으로 결정되고 있죠. 따라서 불평등이 꼭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본다면, 그 차이가 정말로 노력의 차이 인지도 의문입니다. 이런 유명한 말이 있죠.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식의 교육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이것이 취업과 노동시장에서의 성과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어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날지 고를 수 있는 사람은 없죠. 인생의 많은 부분은 노력이 아닌 그저 ‘운’으로 결정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정책을 연구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 자체가 만들어 지지 않거나,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증거 기반정책’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요. 엄밀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엄밀한 과학적 방법으로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하되, 한편으로 는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매 우 중요합니다. 학생들에게 늘 강조합니다. ‘말할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되고, 볼 수 없는 사람에게 눈이 되어주라’구요. 우리 한신대학교 학생들이라면 어떠한 공부를 하던지, 항상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공부했으면 합니다. 2024년 1학기도 다들 행복하고 즐거운 한 학기 만들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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