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고운 (문예‧3)
| 강고운 (문예‧3)

태풍이 쓸고 간 자리에 무더위가 남았다. 하락세를 보이던 기온이 다시금 기승을 부리는 9월, 언제까지가 여름이고 또 언제부터 가을인 걸까.

작년 이맘때에 쓴 일기의 서두이다. 지금은 사라진, 습관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년의 나는 일기를 썼다. 작년의 나는 지금보다 바깥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고, 학교 앞 마라탕과 새우버거가 주식이었다. 시험공부를 할 때면 피피티 내용을 줄줄 외우는 식의 방식이 대부분이었고, 시험 또한 그랬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이다. 지난 1학기는 매주 있는 과제에 쫓기듯 살았고, 오히려 시험 기간에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나가는 것보다는 안에서 쉬는 게 편했고, 배달 음식을 자주 먹게 되었다. 비슷한 점이라면 여전히 햄버거를 좋아하는 정도일 것이다. 고작 일 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내가 있는 바로 이곳이다.

편입하고 맞이하는 두 번째 학기가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줄곧 교사를 꿈꾸던 내가 작가를 꿈꾸다니, 여전히 이질적이다. 한신대학교에 오기 전까지는 쭉 교사가 되고 싶었다. 왜인지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치던 피아노를 갑자기 그만뒀던 것처럼, 교사라는 목표도 그랬다. 갑작스러운 시작에 비하면 꽤 질기고 단단했던 것도 같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는 온통 교사에 관한 동아리와 봉사 활동으로 채워졌고, 모두 똑같은 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열정은 영원하지 않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면 대학에 가기도 전에 그 불씨가 꺼졌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처음과 같을 수 없었고,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몇 년간 공을 들인 탑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꼴을 목도할 수는 없었다. 교사라는 꿈을 포기하는 것은 지난 몇 년이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떠난 마음은 무엇도 이뤄낼 수 없다. 학교 공부는 재미가 없었고, 그 무료함은 나를 지치게 했다. 무엇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을 낭비하는 날들도 많았다. 그런 내게 일종의 터닝 포인트라면, 작년 가을 우연히 본 한 편의 드라마였다.

멍하니 밥을 먹기는 싫어 대충 고른 드라마였는데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여자 주인공의 뻔한 성장 이야기를 밥알 씹는 것도 멈추고 보았다. 한 편에 한 시간쯤 되는 드라마 열 편을 쉬지 않고 보자 아침이었다. 해가 밝아오는 아침에 이불을 덮고 억지로 잠을 청하려 할 때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그때 떠오른 것이 글이었고, 한 번 떠오른 생각은 멈출 수 없었다.

성공한 도전은 용기이지만, 실패는 그저 객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도전의 소극적이던 나를 변화시킨 것은 그저 드라마 한 편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내가 갈 학교와 학과를 결정했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 과정이 마냥 간단하지는 않았다.

평소에 다독자도 아니었을뿐더러, 입시에 필요한 글을 써 본 적도 없기에 앞길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든 되겠냐는 생각이었다.

지금의 내게 작년 9월과 같은 마음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앞으로의 내 인생에 있어 나를 변화시킬 드라마는 몇 편이 더 남아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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