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승엽 (철학‧4)
| 허승엽 (철학‧4)

음악 소리에 파묻혀 세상을 바라본다. 음악과 동행하며 세상사에 대해 기록한다. 그렇게 음악적 나날이 형성되고, 음악적 인생이 흐른다. 필자에게 음악으로 삶을 영위한다는 건 작업과 놀이, 풀이라는 개념을 동반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를테면 음악에 의해 음악을 기록하여 음악을 향해 음악에게 말을 거는 식이다. 모든 삶은 음악으로부터 펼쳐질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혹자의 말처럼 음악이 혹세무민의 시절을 뜯어고칠 수 있는 방안이 되는 게 아니거니와, 우리들의 다각적인 일상을 지탱하는 전부도 아니다. 언제나 음악에는 비어 있는 중심만이 존재한다. 그 자리를 음표로 채우는 고유의 몫을 떠안은 자들을 우리는 아티스트라 부른다.

음악적 경지를 구축한 두 악성을 떠올린다. 1950년 춘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쌍정마을에서 출생해 한국 대중음악의 가왕으로 활동 중인 조용필과 1952년 겨울 도쿄 나가노에서 나고 자라 세상의 소리를 채록한 음악가로 기억될 사카모토 류이치. 근년에 이르러 두 대가의 자취를 보다 깊게 파고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들의 예술을 삶과 죽음 사이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계기가 발생했기 때문일까? 2013년의 19집(《Hello》) 이후 10년 만에 다시 돌아와 ‘결정적인 찰나’의 빛을 포착한 조용필로부터 삶의 근기를 전해 받는다. 9년 전 암이라는 고행을 선고받은 이후에도 생의 앞에 놓인 소리들을 탐구하고 금년 3월 28일 세계 밖으로 떠난 사카모토에게선 죽음으로 가는 자세를 배운다.

작품상으로 어느덧 스무 번째 여정을 펼칠 채비를 하는 조용필과 스무 번째 선율(《12》(2023)로 이생의 음악적 탐구를 마무리한 사카모토의 생사가 겹쳐진다. 우연이라 넘기기엔 너무도 중대한 현상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음악은 자유라고 전하는 예술혼의 생명 상태가 대비되는 순간을 목도한 것이다. 스물이라는 그들의 음악적 시간이 진행을 이루고, 일단의 결미를 맺기까지 얼마나 다양한 차이를 품은 세월이 있었겠는가? 제아무리 가왕과 교수(사카모토의 별칭)의 하고많은 디스코그래피를 거듭 섭렵해도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사카모토는 자신을 프랑스의 거목 드뷔시의 현신으로 여겼다. 조용필은 늘 음악가로서 철저한 전문성과 겸양을 내비쳤다. 필자는 거장의 상상과 덕목을 받잡고 ‘완연히 쓰는 자’로서의 삶을 이어가려 한다. 그러니 비록 그들의 곡조가 품은 아득한 소리의 역사를 가늠할 수 없다 해도, 분명한 사실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자유의 원리를 궁구하는 현재 필자의 모습 그 자체다. 이러한 지향은, 선대의 인상파 물결로부터 사카모토가 느꼈을 순수한 확신과 매상 서 있는 자리를 마땅히 움직여야 하는 자리로 보는 조용필의 철학에서 비롯한다.

73세의 조용필은 환대자들의 열광 속에 쳐지지 않는 장력을 발휘하며 20집으로 가는 길을 여는 중이다. 71세의 류이치 사카모토 역시 육신을 거두었을지언정 남겨진 악상과 선율 덕분에 영혼으로 음악 세계에 찾아오고 있다. 한순간 피고 지는 꽃도 자연의 운행 속에선 돌고 돈다. 하물며 음악은어떻겠는가? 예술 앞에서 죽음과 삶을 손쉽게 갈라서 판단한다는 건 경솔하다. 조용필처럼“늘 같은 생각에 갇혀선”(「세렝게티처럼」) 안 된다. 더불어 사카모토 류이치처럼 보다 먼 곳을 향한 음악을 만나며 자유로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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